커뮤니티·동호회

자유게시판

나는 오프로더인들이 평화애호주의자였으면 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고감동 작성일04-06-24 20:02 조회1,312회 댓글0건

본문

▲ 미군 군납업체로 바그다드에서 활동중인 가나 제너럴 트레이딩 컴퍼니의 직원인 김선일씨가 복면한 3명의 인질범 앞에 앉아 있다.그리고 참수당해 죽었다. 그는 파병을 강행한 노무현이 죽인 것이다. 이라크 재건과 평화를 위해서 파병한다고 했다.이라크 재건이 이 한명의 대한국민의 생명보다도 더 중요하단 말입니까?

*************************************************************************************

[의혹]정부 모르게 파병철회 협상했다?

김천호라는 개인이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았나?




임두만



네 가지 의혹에 대한 진실 찾기



(편집자 註. 브레이크 뉴스는 아침 속보 기사로 김선일씨의 납치에서 살해까지에 얽힌 여러가지 의혹 중 네 가지로 종합하여 그 의혹을 제기 하였다. 그 후 외교부 최영진 차관의 발표를 통하여 본지가 제기한 첫 번 째 의혹인 김선일씨의 납치일자가 애초에 발표된 6월 21일이 아니라 5월 31일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에 본지는 그 후속 취재를 통하여 김선일과 미군 당국, 그리고 한국정부와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에 얽힌 22일의 미스테리를 추적한다.)





1. 정부가 거짓말을 하는가? 가나무역 김사장이 거짓말을 하는가?



On its part, Seoul has rejected the demand to pull out troops and scrap plans to dispatch more.



"The kidnappers have said they are willing to negotiate as long as the Korean government stops making provocative remarks and softens its tone on troop deployment," Obeidi said.



앞의 글은 이라크의 albawaba와 뉴스에서 발표한 전문 중 일부이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국정부의 강경한 파병 방침을 멈추고 톤을 부드럽게만 한다면 협상할 용의가 있다는 저항세력들의 요구를 한국 정부가 거절했다는 말이다. 이런 이라크 저항세력측의 주장은 한국정부의 발언에 비추어 본다면 당위성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한국정부가 이라크 저항세력들의 김선일씨 납치사실을 알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전달받은 것은 국민들이 보도를 접한 날짜인 6월 21일이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라크 저항세력의 주장은 한국인을 처형하기 위한 수순을 밟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알바와바의 보도는 그저 물타기식의 보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가 된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사실을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선일 씨의 납치일이 5월 31일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선일씨가 납치된 5월 31일 부터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그리고 우리의 관련기관들이 사실을 알게됐다고 말하는 6월 21일까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이 미스테리의 23일간을 추적한다.





2. 2004년 5월 31일에서부터 6월 21까지 22일 간의 미스테리



가나무역은 이라크에 주둔하는 미군들에게 군수물자를 납품하는 군납업체이다. 그리고 김선일씨는 아랍어를 전공하는 신학생으로서 자신의 대학원 학비를 벌기 위하여 이 가나무역에 통역원으로 취업하였으며 통역원 신분으로 이라크에 주재하였다. 미군 군납업체의 아랍어 통역원이라면 미군이 현지에서 조달하는 아랍권 현지 생산품을 미군에 납품하는 것이 원가절감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나무역 이라크 주재원들은 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신분을 이라크인들에게 노출시킬 수 밖에 없었다. 김선일씨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들은 경호업체의 경호를 받아야 했으며 김선일씨도 경호업체의 직원들이 경호하는 가운데 업무를 수행중이었을 것이다. 피랍일자가 다시 밝혀지기는 했으나 추정컨데 피랍경위는 가니무역 김사장의 진술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



즉 김선일씨는 5월 31일, 경호업체 직원들과 함께 피랍되었으며 그리고 이 사실은 즉시 미군 당국과 가나무역측에 통보되었을 것이다. 이 때부터 미군 당국과 가나무역 측은 김선일씨 일행을 납치한 이라크 무장세력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였을 것이며 김선일씨 일행을 납치한 단체의 성격을 파악하였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전달 받았을 것이다.



연합뉴스의 김사장 인터뷰를 보면 그는 자신의 협상팀을 믿었기 때문에 정부당국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외교통상부의 신봉길 공보관 역시 정부는 알자지라 방송 이전에 피랍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KBS에서 보도한 이라크 교민들의 발언, 그리고 이라크에 주재하는 한 프리랜서 언론인은 <손석희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이미 이라크 대사관 직원들은 피랍시점을 31일로 추정하고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교민들과 언론인이 거짓말을 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최소한 이라크 대사관 측에서는 알자지라 방송 이전에 피랍사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 역시 "정부 피랍사실 알고 있었다"라는 기사에서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국내정치 상황은 이라크 추가파병 부대인 자이툰 부대의 파병일정을 놓고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의 파병반대 의원들을 설득하고 있는 중이었으며 미국과도 막바지 협상을 진행하며 일정조정에 온 힘을 쏟는 시기였다. 그리고 그 일정은 8월 중순 선발대가 한국군 주둔지로 결정된 아르빌로 출발한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른다. 이러한 시점에서 김선일씨 피랍사건이 공개되었다면, 17일 열린우리당 의총에서 추가파병안 확정을 통과시키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피랍사실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조차 17일 열린우리당 의총 결과가 발표되자 다시 국내는 파병반대 여론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김선일씨 피랍사건이 공개되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정부는 설사 이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김선일씨 구출을 위한 노력을 할 수 없었던 시기라는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 단독으로 정부의 협조없이 "파병철회"라는 국가적 사안에 대해 무슨 자격으로 협상에 나섰냐는 것이다. 이라크 저항세력 역시 일개 사업체 사장에게 파병철회라는 사안으로 협상에 나섰겠는가? 그래서 <오마이뉴스> 역시 외교통상부 신봉길 공보관에게 "애초의 협상안이 무엇이었냐"고 물었고, 신공보관은 "그건 모르겠다"고 답했다. 분명한 것은 파병철회안은 김천호 사장 단독으로 협상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쨋든 이런 협상들이 실패로 돌아가자 납치 당사자인 저항세력들은 최종 시한을 24시간으로 못박고 김선일 납치사실을 공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23일 새벽 2시 이 후 아랍권 위성방송인 "알 자지라" 를 통해 공개된 테이프에, 황색 죄수복을 입은 김선일씨를 둘러싸고 읽어 내려간 저항세력의 마지막 경고문에서 "더 이상의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라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개연성은 너무도 충분하다.





3. 알자지라 방송의 비디오 테이프 내용을 다시 보자.



알자지라에서 들리는 김선일씨의 주장 중 가장 중심이 되는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을 깊이 이해하면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수가 있다.



"I don"t want to die. Your life is Important, my life is important."(나는 죽고 싶지 않다. 당신들의 목숨만 소중한 것이 아니다. 내 목숨도 소중하다.)



이 절규를 하는 김선일씨의 목소리를 착실하게 분석한 MBC는 평소 보통남자의 목소리 톤이 120~130 데시빌이었으나 김선일씨의 당시 목소리 톤은 340 데시빌이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미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으며 정부의 특별한 방침이 나오지 않으면 자신은 죽는다는 것을 직감했었다는 반증이다.



이를 다시 설명하면 17일에 납치되어 4일 간의 감금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막연함과 납치한 세력들의 위협에 질린 나머지 극도의 공포감에 떨고 있을 것이므로 저러한 절규가 나올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공포감에 질리면 목소리도 나오지 않으며 행동도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개된 테이프의 김선일씨는 이미 20여일 간의 감금 생활 중 위협과 조롱에 자포자기 상태가 되었으며 어쨌든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판단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그렇게 가벼이 생각하는 조국에 극도의 불신감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5월 31일 납치되어 끈질기게 진행된 협상에서 이라크 저항세력들은 한국 정부가 파병방침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마지막 위협을 가했고 최종 통보로 준 시한이 24시간 이었고 그 남은 24시간에 한국 정부의 파병방침은 변하지 않을 것이므로 김선일은 이러한 정부의 방침을 전해들으며 극심힌 반 정부 성향이 나타났고 그 반감이 절규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4. 정부의 석방 대책반은 왜 이라크에 급거 특파되었는가?



"알 자지라" 방송의 테이프가 공개되자 정부는 여론이 급박하게 흐르는 것을 막아야 했다. 이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국회의 움직임을 더듬어 보는 것도 흥미롭다.



6월 16일 청와대의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 대표 등 18명의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만찬을 함께 하면서 이라크 파병에 대한 당론을 조속히 확정하여 달라고 요청하며, 그 다음 날인 17일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그동안 당내에서 분분하던 파병 반대의원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일사천리로 처리된다. 더구나 토론공국을 이끌겠다는 정부여당답지 않게 철저히 이번 의총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그 안에서 어떠한 말들이 오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또 그 다음 날인 18일, 정부는 이라크 파병에 대한 최종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21일 테이프가 공개된 뒤 국내의 각 언론들은 가나무역 김사장을 소식통으로 하여 김선일씨가 17일 피랍되었고 20일에 주 이라크 대사관에 보고 되었으며 대사관의 급보를 받은 정부는 부랴부랴 김선일씨 구출계획을 세우게 되고 급조된 대책반이 이라크로 급파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라크 저항세력들이 시한으로 제시한 24시간은 현지시간 21일 오후 7시, 우리 시간으로 22일 새벽 01시였으니 현지에 도착한 대책반이 활동할 실질적인 시간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태연히 대책반을 이라크에 파견하면서 언론플레이가 시;작되었고 우리 정부가 최선을 다하여 김선일씨를 구출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춰진다. 그러나 그 대책반반의 협상안에도 유연성은 없었으며 대통령도 외교통상부 장관도 이라크 파병방침은 불변이라는 강경방침을 밝혔으니 이라크로 급파된 협상단에게는 사실상 어떤 협상권한도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지금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은 정부의 사전 인지문제를 놓고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열자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이 밝혀내야 할 것은,



1. 교민들이 주장하는 대로 5월 31일 피랍시기를 주한 이라크대사관이 사전에 알고 있었는가?



2. 그렇지 않다면 도대체 왜 이라크 저항세력이 결정권도 없는 김천호 사장과 파병철회라는 국가적 사안을 무려 21일동안 협상했는가?



3. 만약 정부가 알았다면 김천호 사장 뒤에서 정부가 막후 협상을 했던가?



4. 애초에 알려진 피랍시기 6월 17일과 열린우리당 의총의 추가파병안 확정한 6월 17일에 상관 관계가 있는가?



이런 의혹들이다. 그러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피랍시기와 살해시기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이상한 발언을 하여 민주노동당 의원대표들에게 집중 비판을 받았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브레이크뉴스와 마찬가지로 피랍시기 진실에 대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의 보도를 소개한다.







<경향신문> 정부 납치 미리 알았다



김선일씨 살해사건과 관련, 정부가 김씨 납치사건을 지난 21일 살해위협 동영상이 공개되기 전에 알고 있었다는 이라크 현지 교민들의 증언이 잇따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교민들의 말대로 이라크 주재 한국대사관측이 오래 전에 김씨 납치사건을 알았다면 은폐의혹과 함께 21일 테러단체의 동영상을 보고나서야 사건을 알게 됐다는 정부 발표가 거짓말이 되는 셈이다.



나아가 이라크 대사관이 외교부 본부에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아 납치사실을 오래 전에 알고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론이 급부상할 수 있다. 설혹 납치 시점을 정부가 몰랐다 해도 교민 보호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을 면할 길이 없어 정부는 이래저래 비난을 사게 됐다. 집권 2기에 들어선 노무현 정권이 엄청난 암초를 만난 셈이다.



최영진 외교통상부 차관은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의 말을 인용, 납치 시점으로 최소한 3개의 다른 시기가 거론됐다고 밝혔다. 알 자지라 방송의 첫 보도가 있었던 지난 21일에는 ‘17일’을, 22일에는 오전과 오후에 각각 ‘15일쯤’과 ‘5월31일 이후일 가능성’으로 김사장이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김사장의 진술이 오락가락한 데 1차적 원인이 있지만 주이라크 대사관 등 현지에서 기초적인 사실 확인이 없이 김씨 구명에 뛰어든 셈이다.



바그다드에서 활동하는 교민들은 현지 한국 공관이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 프리랜스 언론인은 국내 라디오와의 회견에서 “주이라크 대사관 직원이 피랍 시점을 ‘31일로 추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주이라크 대사관에서는 알 자지라가 첫 보도한 21일 이전에는 피랍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한사코 부인했다.



정부의 김씨 납치사건에 대한 사전 인지 여부는 김씨의 생사를 가름하는 중대 사안이다. 무엇보다 김씨를 납치한 테러단체가 파병 철회를 조건으로 내건 상황에서 정부의 추가파병계획 최종 확정 시점(18일) 이전에 납치사건을 알았다면 교섭의 여지가 훨씬 넓었기 때문이다.



한 국제문제 전문가는 “정부가 지난 18일 이전에 납치사실을 알고도 파병계획을 추진했을 리는 없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정부가 사실상 김씨를 간접 살인한 셈이 된다”고 말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정부의 구명 움직임은 허둥대다가 끝났다. 무엇보다 테러단체의 정확한 의도를 읽는 데 실패했다. 테러단체는 처음부터 ‘한국군 철수’라는 정치적인 목적의식이 투철했지만 이들이 제시한 1차 ‘살해시한’이 지난 22일 새벽으로 끝나자 “최소한 김씨의 신변에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낙관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23일 국회에서 “김씨를 납치한 단체는 처음부터 (김씨를) 살해할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뒤늦게 보고했다. 또 “피랍사실을 처음 알게 된 48시간 동안 테러단체가 어디에 있는 어떤 단체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고 시인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22일 밤 김씨가 시신으로 발견되기 불과 20분 전 외교부를 방문, “희망적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엉뚱한 보고를 받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연출됐다.



〈김진호·이해인기자 jh@kyunghyang.com〉



<한겨레신문>‘악몽의 23일’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



김천호씨 “미국서 16일 들어”…미국쪽은 부인

최근 팔루자 대규모 공습 김씨 운명 재촉한듯



22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가나무역 김선일씨가 애초 알려진 것과 달리 지난달 31일 납치됐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에 따라 지난달 31일부터 주검이 발견된 22일까지의 ‘악몽의 23일’을 둘러싼 의문점도 증폭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김씨의 행적은 아직 베일에 가려있다. 그의 피랍 사실을 정부에 확인해주고, 구출 협상을 벌인 것으로 돼 있는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의 진술이 계속 달라진 탓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피랍 날짜 오락가락= 사장은 김씨의 피랍시점에 대해 두 차례나 말을 바꿨다. 김 사장은 지난 21일 새벽 4시 <알자지라>에 피랍사실이 보도된 뒤 이라크 한국대사관과의 전화통화에서 김씨가 17일 납치됐다고 말한 것으로 정부는 밝혔다. 하지만 같은 날 저녁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선 “4~5일 전 미군 쪽으로부터 실종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밝혀 피랍 시점에 대한 혼란을 낳았고, 급기야는 이라크 대사와의 직접 조사에서는 5월31일로 시점을 훨씬 앞당겼다.



정부는 바그다드 현지 소식 등을 종합할 때 5월31일께를 유력한 피랍날짜로 보고 있다. 이라크 현지에서 한국군 파병과 김씨 피랍사건 등을 취재하고 있는 프리랜서 피디 김영미씨는 23일 <한겨레>와 전화통화에서 “이라크 한국인들 사이에 김씨가 6월17일이 아닌 5월30일 납치됐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김 사장이 피랍사실을 20일 가까이 숨긴 것은 일단 조용하게 문제를 풀려고 했던 ‘욕심’이 작용한 때문으로 추정된다. 피랍 사실이 곧바로 공개될 경우, 교민 안전 문제가 불거져 사업철수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지난 10일 이후 아랍인 변호사를 통해 여섯 차례나 김씨의 석방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한국대사관 등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김 사장의 이런 계산은 역설적으로 정부 차원의 협상을 벌일 시간만 없애는 결과를 낳았다.



◇방송 뒤 이틀째의 신속한 살해= 5월 30일께 피랍된 게 사실이라면, 이라크 무장세력은 20일 이상 김씨의 납치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위험 부담을 안고 있는 납치세력의 행동으로는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이다. 이를 두고선 김씨가 한국인이서 ‘제1의 표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거나, 뭔가 협상을 벌일 만한 소지가 있지 않았겠느냐는 등의 추정이 가능할 뿐이다.



다만 어느 정도 확신이 가능한 대목은 우리 정부가 지난 18일 이라크 추가파병을 최종 결정하면서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다. 무장세력들은 정부의 추가파병 결정에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던질 필요성을 느끼고 <알자지라>에 살해 위협 내용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실은 무장단체와 석방 협상을 벌였다는 이라크인 모하메드 알-오베이디가 23일 <문화방송> 라디오의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무장단체들이 협상과정에서 “군대 파병을 멈추라”고 요구했다고 밝힌 데서도 확인된다. 오베이디는 이들이 “오늘 아침 언론을 통해 이라크에 파병하겠다는 선언을 멈추라. 우선적으로 그런 선언을 멈춰야 협상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천호 사장이 무장세력과 6차례나 협상을 벌였고 김 사장은 무장세력이 안전을 보장하고 석방을 약속했다고 밝혔는데 왜 풀려나지 않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미국은 언제 알았나= 미국이 김씨의 피랍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는 가장 손꼽히는 의문점이다. 이를 두고 김 사장과 미국 쪽의 설명은 거의 180도 가까이 다르다. 김 사장은 그동안 △16~17일께 미군으로부터 김씨의 실종 사실을 들었고 △김씨와 함께 미국 헬리버튼 계열 케이비아르(KBR) 직원도 억류됐으며 △20일 모술에서 미군 쪽과 대책을 협의했다고 주장해왔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미군 쪽은 <알자지라> 보도 이전에 이미 김씨의 피랍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우리 정부에 이를 알려주지 않은 셈이 된다. 특히나 미군은 김씨가 살해된 곳으로 추정되는 팔루자에서 최근 대규모 공습을 벌였고, 이 공습이 김씨의 생명을 제촉한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터라, 미국의 사전 인지 여부는 여전히 한-미간 쟁점이다.



미군은 김씨가 붙잡혀 있던 19일 전투기로 팔루자 교외 주거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퍼부었고, 이 공격으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22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탓에 일각에선 “미군이 김씨의 피랍 사실을 애써 눈감은 채 군사공격을 감행해 결과적으로 ‘동맹국’ 국민인 김씨의 생명을 위협하는 계기를 제공한 것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이날 “미군이 김씨의 피납을 알고도 숨겼다는 건 말이 안된다”며 “이라크는 현재 모든 것이 불투명하며, 가나무역 사장의 이야기도 그런 불투명한 상황의 하나로 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재권 박민희 기자 jjk@hani.co.kr






▲이라크 재건이 대한국민의 생명보다도 더 중요하단 말입니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